사유의 공간, 존재의 기록

📘 초영의 교황 – The Hierophant| 지식을 넘어 깨달음을 이끄는 존재

초영Tarot 2025. 3. 15.

초영의 피아노 렛슨, 그 기억 속의 교황 햇살이 부드럽게 스며드는 오후, 붉은 카펫이 깔린 따뜻한 공간. 흰색 그랜드 피아노 앞에서 교복을 입은 학생이 정성스럽게 건반 위에 손을 올리고 있다. 그 옆에는, 긴 머리를 단정하게 묶은 여인이 진지한 눈빛으로 아이의 연주를 바라본다. 선생님이자 음악가로, 엄마이자 꿈의 안내자로 그 자리에 존재했던 사람. 이곳은 단순한 학원이 아니라 한 아이의 감성이 자라나는 공간이며, 한 여인의 사랑과 열정이 빛을 발하던 작은 왕국이었다. 모든 것이 아득한 추억이 되었지만, 그 공간의 따뜻함은 여전히 살아 있고, 그 시간의 사랑은 지금도 어딘가의 울림이 되어 흐르고 있다.

 

나는 오랫동안
'음악·미술 아카데미'를 운영했다.

단순히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표현력을 다방면으로 키워주고 싶었다.

때론, 아이들이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도록,
울고 싶으면 울어도 된다고도 했다.

이런 방식이 내게 자연스러웠던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의 담임 선생님 덕분이었다.

어린 시절 나는 내성적이었고,
칭찬을 받으면 부끄러워 고개를 푹 숙이곤 했다.

그런데 선생님은 발표할 때
정확한 멘트를 알려주셨다.

“저는 ㅇㅇㅇ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것은...”

이처럼 명확한 구조를 제시하셨고,

덕분에 우리 반 친구들은
모두 발표를 함에 있어
주저함이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몇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 가르침이 선명하게 떠오르며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을 잊을 수가 없다.

그런 경험들과
부모로서의 삶을 살게 되면서
항상 학생들의 여러 모습들을
관찰하는 습관도 생겼던 것 같다.


학부모님들은
내게 이런 말을 자주 하곤 했다.

"원장님은 어떻게
저보다 제 아이를 더 잘 알고 계세요?
그래서 항상 믿고 맡깁니다."하고...

정말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나는 언제나
열정적으로 학원을 운영했다.

내 열정이 사그라들면,
삶의 의미도 희미해지기에...

극단적으로
"열정 없는 삶은 죽은 것이나 똑같다."란 말을
지인들에게 자주 하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이런 극단성은
내가 풀어야 할
숙제의 일부분이라고도 생각한다.

나는 아이들에게
단순한 기술이나 이론이 아닌,
음악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법을 알려주고 싶었다.

크리스마스 파티 때는
미술실을 댄스 파티장으로 꾸며
함께 춤을 추기도 했고,

또 아이들을
연미복이나 드레스를 입혀
학원 무대에서
연주하는 모습을 찍어
액자로 만들어 선물하기도 했다.

아무리 시간이 흘려도
나를 잊을지언정,
자신들의 그 순간순간이
특별함으로

기억에 오래 남기를 바랐었다.

교황의 여러 모습들을 떠올리다 보니,
나도 잊고 있었던
많은 에피소드가 떠올라 반가웠다.

항상 좋은 기억보다
힘들었던 순간들에
꽂혀 있는 경향이 있었는데,

오래간만에
예쁜 추억에 미소를 짓고 있다.

이런 나의 경험과 목마름,
그리고 운명이
결국 나를
심리 공부와 타로의 세계로
이끌었다고 확신한다.

나는 언제나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존재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인간관계에서의 의문에
늘 질문했다.

“왜 그럴까?”
그리고 답을 찾다 보면,
결국 모든 것이 이해되었다.

이런 과정의 연속이
나를 성장하게 했고,

진정한 행복에 대한 깨달음을
찾아가고 있는 길이란 걸
오늘 다시금 느끼게도 됐다.

완벽한 교황은 없다. 그러나 좋은 교황은 존재한다.

많은 사람들이 교황을
‘모든 것을 아는 존재’로 여기지만,
그는 완전한 지식을 가진 절대자가 아니다.

그렇다면, 교황은 어떤 역할을 하는 사람일까?

  • 교황은 완전한 앎을 지닌 자가 아니라,
    끊임없이 배우고 깨달음을 경험하게 하는 사람이다.

  • 교황은 절대적 진리를 설파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이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인도하는 존재다.

  • 교황은 신의 가르침을 전하는,
    삶의 길을 밝히는 등불과 같은 존재다.

  • 그는 단순한 지식 전달자가 아닌,
    배움과 깨달음의 다리를 끊임없이 놓는 자다.

나는 학원을 운영할 때 아이들에게
단순히 피아노 치는 법을 가르친 것이 아니었다.

음악을 통해 감정을 표현하는 법,
즐기는 법을 알려주려 했다.

이것이 바로 교황의 역할과 닮아 있다고
감히 말해본다.

그리고, 많은 아이들과 전공을 하고 있는 제자들이
나를 괜찮은 선생님으로 기억해 주길 바라본다.

교황의 딜레마

사람들은 많은 것을 배우고 싶어 하지만,
실제로 행동하는 사람은 적다.

"배우고 싶어요!"
하지만 정작 배우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이 사실을 알면서도,
귀찮아서 행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마다,
교황은 아마 자책할 수도 있다.

‘나의 교수법이
지식을 전달하는 것에만 집중돼 있나?

나의 전달이 재미가 없나?
모든 문제가 과연 나한테 있는 걸까?'

나도 이런 고민을 수도 없이 했지만,
결국 깨달았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내 열정을
타인에게 강요해서 안 된다는 것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황은 계속 길을 보여줘야 한다.

왜냐하면,
지금 당장 행동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어도
그것이 끝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무언가를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것처럼,
그들에게도 시간이 필요하다.

씨앗이 뿌려지면
언젠가 싹을 틔울 순간이 온다.

교황은 그 기다림의 시간조차
묵묵히 받아들이며,
스스로를 연마해야 한다.

결국 그들의 씨앗이
땅을 뚫고 나올 것을 믿으며....

우리는 각자의 삶에서 어떤 교황이 될 것인가?

완벽할 필요는 없다.
애초에 완벽은 존재하지 않으니까.

타인에게 무엇인가를 행하는 데
부담을 가질 필요도 없다.

교황은 답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고 길을 보여주는 사람이다.

부모일 수도 있고,
대학 교수, 종교인, 단순 지식 전달자, 강연자일 수도 있다.

어떤 상황에서든,
높은 곳에서 군림하는 존재가 아니라,

다리가 되어
사람들을 새로운 곳으로 이끄는
올바른 멘토가 돼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먼저,
나 자신에게 그런 존재가 되고 싶다.

나 자신을 돌보고,
공부하며,
나의 영혼이
진정 원하는 길을 가고 있는지
끊임없이 확인하고 싶다.

그리고 그 길이 옳다면,
거침없이 나아가는 용기와
쉼 없는 인내심을
더 많이 장착하고 싶다.

왜냐하면,
스스로가 선택한 일에
용기로써 행하지 않으면,

결국 후회와 자기 신뢰 부족으로 인해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을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교황을 닮은 사람이 되고자
계속 정진할 것을
내게 약속한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