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고도 가까운 현실
나에겐 하나뿐인, 멀고도 가까운 이모가 있다.
미국에 사시는 분인데,
이대를 졸업하신 아주 똑똑하고 우아한 분이다.
사촌들도 아주 훌륭히 키워내셨고,
그곳에서 여전히 단단하고 품위 있게 잘 살아가고 계신 분.
그런데, 독실한 기독교인이시다.
엄마 쪽이 원래 기독교 집안인데
엄마는 결혼 후 시댁 분위기 때문에
불교로 전향하셨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런 이모께,
오래전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
내가 이혼하고
학원이 갑자기 어려워지면서
모든 상황이 악화됐을 때
이모가 달러를 보내주신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그건 도움 이상의 사랑이었다.
🔮뜻밖의 전화, 그리고 조심스러운 설명
그런데, 작년에 뜬금없이 연락이 오셨다.
내가 '초영 올인원 타로북'에만 매달리고,
‘편지로 받는 속마음 카드’까지 만들며
혼신의 힘을 쏟고 있던 시기였다.
엄마가 이모께
내가 타로를 한다고 말씀드린 모양이었다.
그 얘기를 들으신 후
한참 아무 연락이 없다가—
갑자기 국제전화가 왔다.
날 좀 지원해주고 싶다고 하셨다.
사실, 그때 나는 모든 걸 뒤로하고
마무리 지어야 할 일에
두렵지만 도전 중이었다.
그래서일까…
그 말이 참 반갑고 고마웠다.
그런데, 타로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서
나는 괜히 오버했던 것 같다.
"타로는 심리 상담 도구예요."
"저, 타로로 정말 많이 치유됐어요."
"지금은 정말 좋은 책을 쓰고 있어요."
진심으로, 아주 열심히 설명했다.
하지만… 느낌이 왔다.
"나는 이모의 마음 속에 그냥 ‘점쟁이’로 이미 인지돼 있었구나!" 하고...
🔮닫힌 메일함, 닫힌 마음
이모는
“타로에 대해 좀 더 알아볼게.”
그러면서 은행 정보를 메일로 보내달라고 하셨다.
나는 메일을 보냈다.
기다렸다....
하지만 그 이후로 아무 연락도 없었다.
메일 확인도, 안부도, 아무것도 없었다.
한동안 가슴이 너무 아팠다.
솔직히… 자존심도 꽤 상했다.
이모의 시선에는
이미 바꿀 수 없는 색안경이 씌워져 있었다.
설명하려던 내 진심이
전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조용히 오래도록 나를 괴롭혔다.
사실, 내가 도움을 요청한 것도 아니었다.
기대를 주지 않았다면 상처도 없었을 것이다.
나는 정당했고,
타로 역시 부끄러울 것이 없었다.
이모에게 타로는
여전히 멀리해야 할 오컬트적인 것이었다.
나는 사실, 그걸 바꿀 필요도 없었다.
그래서 그냥 조용히 삼켰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마음을 쏟기보단,
지금 내가 걸어가고 있는 이 길을
더 단단히 품는 쪽을 선택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타로가 내 곁에서 또다시 오해받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
🔮타로도 결국은 믿음이다.
종교와 다르지 않은,
어떤 신념이고,
인간과 신성, 그리고 우주를 잇는 오래된 도구다.
과거엔 종교적 의식 속에서 사용되기도 했고,
신의 뜻을 읽기 위한 수단으로 쓰이기도 했다.
나는 그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단지, 진심으로 전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괜찮다고 생각하게 됐다.
모태신앙을 가진 이모를 설득한다는 건
계란으로 바위 치기였다.
그래서 오히려 나를 다독였고, 현실을 그대로 받아 들였다.
"이건 우주가 나를 약하게 두지 않기 위해 주신 통과의례야."
"이것도 계획이었을 거야."하고....
🔮공부는 견디는 일이다
요즘엔, 남녀 불문하고 타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타로의 깊이를 느끼는 이들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정말 다행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타로를 공부하면서부터
여사제 카드를 참 많이 만난다.
보통 심리나 타로, 신내림, 철학을 하는 분들이
교황이나 여사제가 자주 등장하는데
나 역시 늘 여사제가 반겨주고 있다.
그럴 땐...
괜히 안심이 되고, 뿌듯하기까지 하다.
마치 "괜찮아, 이 길이 맞아"
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타로와 대화를 나누며
우주의 에너지를 읽고,
나의 무의식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지금 내가 가는 길을
스스로 긍정하게 된다.
그리고,
견디는 힘도 생긴다."
하지만,
이 타로 공부의 과정을
끝까지 견디는 사람은 많지 않다.
공부의 여정은 생각보다 길고,
진정한 열의와 목표가 없으면
끝까지 가기 힘들다.
내가 음악 학원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이나 입시생들은 그냥 한다.
부모가 시키는 대로, 어쩌면 습관처럼.
그런데 성인반은 다르다.
렛슨비를 내놓고도
진짜 한 달을 못 채우고 그만둔다.
카페 스터디에서도 마찬가지임을 확인하고 있다.
그런데, 어떤 분야든지
절실함이 부족하면
중도 포기가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나도 그런 부분은 넘쳤으니깐....
🔮조용한 사람은, 더 많은 것을 안다
여사제를 보면, 늘 그런 생각이 든다.
"세상 사람들의 정과 부, 희로애락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사람.
어떤 판단도 내리지 않은 채,
그저 귀 기울여 듣는 사람.
그러면서도
신의 지혜와 삶의 태도를
조용히, 단정하게 전하는 사람."
"스스로의 삶을 꿋꿋하게 살아가며,
누군가의 말에 휘청이지 않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길을
그저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
그래서인지,
그녀 앞에 서면
나는 내면 깊숙이 잠든 나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그런데, 세상은 조용하지 않다.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오히려 타인더러 증명하라고 할 때가 많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든 여사제는 굳이 앞에 나서지 않는다.
그리고, 그녀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당신 생각은 자유입니다.
하지만 내 믿음까지 흔들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러니, 하고 싶은 대로, 마음대로 하세요.
그리고, 깨닫고 달라지면 됩니다.”라고....
🔮지혜는 결코 쉬운 길이 아니다
타로를 깊이 이해하고
그 안의 언어를 자기 삶과 엮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특히, 여사제의 지혜는
책 몇 권으로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다.
삶의 시간을 견뎌낸 사람만이
고요한 혜안을 품을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만이,
타인을 조용히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비로소—
누군가의 삶 앞에서
쉬이 판단하는 오류를 피해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여사제의 시간은,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은 힘이다."
나는 종종 생각한다.
나는 앞으로 얼마나 더 깊어질 수 있을까?
내가 나를 제대로 지켜볼 수 있는 내공을 키울 수 있을까?
그런 순간, 여사제의 지혜가 내 안에 잠시 머문다.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은 강인함.
나이가 들수록 더 침묵하는 힘.
그리고, 조용히 자신을 지켜내는 자존감.
"나는 이제 타로와 함께
이 여사제의 지혜를
내재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자발적 고독녀다.
타로를 만나고부터였을까?
그리고, 외로운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언젠가부터, 나는 고요한 질문을 던지고
그 대답을 스스로 찾는 방식에 익숙해졌다.
그리고, 그 방식을 따른다. 의심 없이....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타로를 아끼고, 이해하려는 당신 역시도…
고결하고 숭고한, 지혜로운,
현대의 아름다운 고위 여사제다.
'사유의 공간, 존재의 기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초영의 교황 – The Hierophant| 지식을 넘어 깨달음을 이끄는 존재 (0) | 2025.03.15 |
---|---|
👑 초영의 황제 – The Emperor | 힘과 명예의 균형을 찾는 여정 (0) | 2025.03.15 |
👑 초영의 여황제 – Empress | 여황제의 사랑은 끝이 없다 (0) | 2025.03.08 |
🌙 초영의 마법사 – Magician | 난 아직 테이블 밖을 꿈꾸고 있다 (0) | 2025.03.03 |
🌙 초영의 바보 – The Fool | 영혼의 순례를 시작하며 (0) | 2025.03.0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