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속에 가려진 진실 – 프시케의 시련》
이 일러스트는 소드 2 카드의 핵심 상징인 결정의 갈림길,
그리고 감정과 진실 사이의 외면을 중심으로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림의 중심에는 눈을 가린 젊은 여인이 서 있다.
그녀는 바로 프시케의 모습으로,
자신의 감정과 진실, 그리고 사랑의 본질을 직면하지 못한 채
내면의 두려움과 외면 속에 머물러 있는 존재이다.
프시케의 앞에는 두 자루의 검이 교차되어 있고,
이는 그녀가 결단을 내려야 하는 내적 갈등을 나타낸다.
검은 평형을 이루지만, 동시에 긴장감을 자아내며
그녀가 어느 방향도 쉽게 선택하지 못하고 있음을 상징한다.
그녀의 오른손에는 작은 촛불이 들려 있다.
이 촛불은 어둠 속에서 진실을 밝혀줄 수 있는 단 하나의 빛이지만,
그녀는 눈이 가려진 채 그 빛조차 바라보지 못하고 있다.
이는 소설 속 라엘이 마주한 진실을 볼 수 있었음에도 침묵했던 시간들,
그리고 미라키가 끝내 하지 못한 고백의 순간을 은유한다.
전체적인 색감은 푸르고 어두운 안개 속에 감싸인 듯한 분위기로,
심리적 혼란과 감정의 억제를 시각적으로 표현해주며,
검은 배경은 감정의 그림자와 무의식의 두려움을 드러낸다.
라엘과 미라키는
석류향을 뒤로 한 채 정처 없이 길을 걷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허기져 있었고,
배고픔은 점점 무거운 피로로 번져가고 있었다.
그렇게 걷다 도착한 곳은
작고 조용한 바닷가 마을이었다.
마을은 마치 동화책 한 장면처럼 완벽한 평화를 품고 있었다.
고기잡이에서 돌아온 어부들은
기다리던 가족들, 그리고 마을 사람들과도 다정한 인사를 나누었고,
서로를 끌어안으며 웃음을 터뜨렸다.
막 잡아온 생선은
자연스럽게 이웃들의 저녁식사로 나뉘었고,
아이들은 생선을 담은 바구니를 안고
집집마다 뛰어다니며 고마움을 전했다.
모든 얼굴엔 미소가 걸려 있었다.
손을 잡은 부부들,
팔짱을 끼고 걸어가는 연인들,
서로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는 노부부까지—
마을은 숨결조차 따뜻하게 느껴질 만큼
정겹고 평화로워 보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미라키는 라엘에게 말했다.
“여기서 살면 그냥… 편할 것 같아.
뭔가 다 정해져 있어서,
아무도 아프지 않고, 아무도 흔들리지 않고… 그냥 웃으면서.”
그리고는 멋쩍게 웃다가
“그래도… 난,
지금처럼 라엘과 함께 하는 이 시간이 더 의미 있어.”
라고 덧붙이며 잠시 눈을 피했다.
그런 미라키를 바라보던 라엘은
가슴 한쪽이 찌르듯 아팠다.
이 어지러운 상황 속에서도
‘지금이 더 의미 있다’고 말하는 미라키가,
혹시 자신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건 아닐까 싶었기 때문이었다.
라엘은 눈앞의 풍경이
갑자기, 낯설고 어색하게 느껴졌다.
“미라키, 이런 마을 본 적 있어?”
미라키는 잠시 고개를 기울이다가 조용히 말했다.
“음... 겉으론 완벽해 보여.
근데 말이야—
여긴 마치,
과한 표정, 과한 친절,
억지 웃음 속에서
애써 감정을 표현하는 느낌이 살짝 들어.
그런데... 내 느낌이 틀릴 수도 있지.”
미라키의 마지막 한마디에,
라엘은 오히려 자신의 속마음을 들킨 기분이었다.
라엘은 눈앞의 풍경이 왠지 낯설게 느껴졌다.
왜냐면, 라엘이 살아온 곳은
이 곳의 풍경과는 너무도 달랐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살던 마을은
강요와 답습,
특히 여자의 순종과 복종을 미덕처럼 가르치는 곳이었다.
규율이라는 이름의 굴레...
그 안에서의 라엘은
그저 모두가 그렇게 살아간다고 믿었었다.
그러나 이곳의 공기는
뭔가 다르게 느껴졌다.
어쩐지, 모든 것이 너무 가볍고
붕 뜬 듯한 느낌이었다.
“…혹시, 내가 이상한 걸까?”
라엘은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숙였다.
허기진 두 사람은
조심스레 마을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요기를 청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라엘은 마을의 촌장처럼 보이는 노인에게 정중히 말했다.
“저희는 여행 중입니다.
찾아야 할 것이 있어 길을 걷고 있습니다.
잠시 요기를 할 수 있을까요?
그 대신, 도울 일이 있으면 기꺼이 돕겠습니다.”
그때,
어디선가 다정한 남녀 한 쌍이 다가왔다.
둘 사이에는 사랑이 넘치는 듯 보였고,
환한 미소와 함께 다정하게 인사했다.
그리고, 촌장 옆의 어르신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버지, 저희 집으로 모셔가요.
좀 쉬게 해드려야 할 것 같아요.”
젊은 남자는 라엘과 미라키를 향해 돌아서며 말했다.
“아, 저희 아직 인사를 못 드렸네요.
저는 카이엘이고, 이 사람은 제 아내 이레나예요.”
이레나는 밝게 웃으며, 라엘의 손을 잡았다.
라엘은 잠시 놀랐지만,
이 마을의 분위기를 파악했기에
활짝 웃어 보이며 자신의 손을 이레나에게 포갰다.
“라엘입니다. 저희는... 조금 전 이 곳에 도착했어요.”
미라키가 옆에서 짧게 인사를 더했다.
“미라키입니다.”
카이엘이 손을 내밀며 말했다.
“오늘 저녁, 저희 집에서 함께 하시죠.
여행 중이라면 더더욱 쉬어가셔야죠.”
이레나도 작게 웃었다.
“간단한 식사지만… 정성껏 준비할게요.”
그 말에 라엘과 미라키는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사람 사이에 짧은 정적이 흘렀고,
그 순간 바닷바람이 지나가며
말보다 먼저 다가오는 감정의 기척이
조용히 공기를 흔들었다.
그렇게 다섯 사람은
동네 사람들의 따뜻한 배웅을 받으며
부부의 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사람들의 시야에서 벗어난 순간—
그 사랑스러워 보이던 부부는
아무 말 없이 뚝 떨어져 걷기 시작했다.
공기는 금새 싸늘해졌고,
서로가 서로에게 투덜대듯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걷고 있을 뿐이었다
갑작스러운 분위기의 변화에
라엘과 미라키는
조용히 눈을 마주쳤다.
그건,
평화라는 이름 아래 감춰진 칼날의 기척이었다.
미라키와 라엘이 마을에 들어섰을 때,
이 부부는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한 쌍의 커플이었다.
멀리서 보아도
둘 사이에 흐르는 애정이 느껴졌고,
마을 사람들은 그들을
마치 “사랑을 품은 천사들”처럼 바라보는 듯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의 뒤를 따르던 라엘은 느낄 수 있었다.
그 웃음 뒤에 숨어 있는 서늘한 냉기와
아름다움 속에 스며 있는 이중성을...
순간, 어떤 불길한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하는
묘한 두려움이 스쳤지만,
라엘은 스스로를 다잡았다.
“나는 4원소를 지녔고,
미라키는 검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무방비가 아니야.”
다행히 그들의 집에 무사히 도착했고,
이레나는 생선과 채소로 저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서로 말을 거의 하지 않은 채
각자의 일에만 집중했다.
라엘과 미라키는 그 정적 속에서
어쩐지 미안함을 느끼며
조용히 마당의 닭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때때로 이런 정적이 필요할 수도 있지.
말이 없을수록, 그 안엔 더 많은 말이 숨어 있기도 하니까.”
미라키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런데—
갑자기 이레나가 카이엘에게
소리를 질렀다.
“멍청하긴… 진짜 쓸모가 없어.”
욕설과 무시는 계속 이어졌고,
카이엘도 기다렸다는 듯, 절대 지지 않았다.
“지독한 여편네. 뚱뚱한 여편네. 냄새나는 여편네…”
마치 리듬을 타는 노래처럼,
자극적인 말들이 주고받아졌다.
결국, 여자는 남자의 정강이를 걷어찼고,
남자는 바닥에 구르며
비명을 질렀다.
라엘은 놀랐지만,
이것이 처음이 아닌 일이라는 것을 곧 알아챘다.
익숙한 반응, 거리낌 없는 폭언과 행동....
이건 일상의 일부였던 것이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이레나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자, 식사해요.
우린 매일 이래요.
신경 쓰지 말고 편히 드세요.
차린 건 없어요.
사는 게 이래요.
하지만, 대접하고 싶은 마음이 희안하게 들었어요.”
미라키와 라엘은
혼란스러웠지만, 웃으며 다가갔다.
이레나는, 그래도 정이 있었다.
나름 말 못할 고민이 있어 보였고, 카이엘도 그러했다.
뭔가 안쓰러움이 느껴지는 상황이었다.
할아버지는 기침을 한 번씩 할 뿐 아무 말이 없었고,
크게 신경쓰지도 않았다.
식사도 당신 방에서 조용히 혼자하고 있었다.
오히려 그게 편하다는 듯...
"잘 먹겠습니다. 감사해요.
번거롭게 해드리네요."라는 인사를 하고
라엘과 미라키는 식탁에 앉았다.
간만에, 사람들과 어울려 식사하는 것이 좋기도 했다.
하지만, 이 배려에
뭔가를 꼭 해주고 싶다는 깊은 감동도 함께 올라왔다.
또한, 이런 상황의 배경이
점점 더 궁금해지는 것도 어쩔 수 없는 본능이었다.
'이 마을 사람들은… 다 이런 식인가…?
어떤 연유에 이러는 것일까?'
다행히 식사 중엔
아무런 갈등도 일어나지 않았다.
여자는 조용히 음식을 나눠주었고,
덕분에 두 사람도
간만에 따뜻한 음식으로 허기를 채울 수 있었다.
이 여정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겠지만,
미라키와 함께 하는 순간 순간이
이상하리만치 좋았다.
그리고 라엘은 생각했다.
'전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이젠 조금도 없어.'
그 말은 속으로만 흘러나왔지만,
묘하게 가슴 안에서 울렸다.
라엘과 미라키는 그 순간 서로를 바라봤다.
이런 무의식적 행동에 내심 놀랐지만,
그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식사를 마저 했다.
미라키의 눈빛 속에서 라엘은,
자신의 마음이 들킨 것 같아 순간 얼굴이 달아오름을 직감했다.
"바닷바람을 좀 쐬고 싶어요.
그리고 두 분 이야기도 더 듣고 싶어요.
맛있는 식사 정말 감사했고요...
저도 이런 평온한 일상이 얼마만인지 모르겠어요.
함께 느껴보고 싶네요.
혹시, 우리… 친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이레나는 미소 지으며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부부의 집 뒷쪽의 해변을
아름다운 달빛이
그들의 산책길을 은은하게 밝혀주고 있었다.
다행히 마을 사람들은 아예 보이지 않았다.
마치 이 네 사람만을 위해
시간이 멈춘 듯했다.
그러나… 여자는 또 습관적으로 톡 쏘아붙이 듯,
싸움을 걸듯, 화섞인 목소리로 카이렌을 향해 말했다.
“넌, 사람들 앞에서 왜 날 그렇게 사랑하는 척을 해?
너, 따로 좋아하는 여자 있잖아.”
그녀의 말에
공기 속에 조용히 떠있던 긴장이
마침내 바닥을 쳤다.
“너도 위장술 부리고 있잖아.
‘존’이라는 놈한테 질투심 유도하려고.
내가 모른 척 해주는 것도 고마운 줄 알아야지, 이 여편네야.”
둘은 순간 험악해졌고,
서로의 멱살을 잡으려 하고 있었다.
라엘과 미라키는 급히 그들을 제지하며 떼어놓고
분위기를 바꾸려고 뭔가를 열심히 궁리하고 있었다.
침묵이 한동안 흘렀고,
그 사이 라엘이 조용히 물었다.
“그럼... 왜 지금도 함께 하고 있는 거예요?
정말 서로가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건가요?”
그들은 동시에 대답했다.
“사실, 그건 아니에요. 그냥 떠보는 거죠.”
그 대답에
라엘은 피식 웃음이 났다.
그 안에는 묘한 진심과 자기방어, 질투심이
묘하게 섞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카이엘이
거칠게 토로했다.
“네가 날 사랑하게 만들었잖아.
그때 내가 가진 게 많아서?
부자였어서?
그런데 우리가 가난해지니까
네가 돌변한 거잖아.
사실 니네집 살리려고
몰래 배 팔아먹은 건, 너야.
결국, 아버지랑 나 이렇게 만든 장본인.
우린, 남 부럽지 않았어.
하지만, 지금도
아버지와 내가 널 계속 봐주고 있다는 거 몰라?
염치없는 여편네 같으니라고.”
이레나는 모든 사실을 억지로 부정하는 거 같았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엔
분명히 한때의 죄책감, 지금의 무기력함이 어른거렸다.
남자는 낮게 탄식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 앞에선
기죽기 싫어서 행복한 척하는 거야.
이 마을은 혼자 있는 사람을
이상하게 본다니까...
그리고, 우리가 깨질 거라며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도 있어.
우리집이 이 꼴이 난 건, 다들 알고 있으니.
뭔가 험담할 꺼리가 필요하니깐.
다들 완벽한 척, 모르는 척 연기하고 있지만...
난, 사람들의 사는 꼴을 몰래 지켜봤어.
다 우리랑 똑같더라고.
너무 역겨웠지만,
우리가 선택한 게
결국 잘 사는 것처럼 보이려는 본능적 선택이었어.
이 곳을 벗어날 수도 없고
구설이 돌면, 아무런 도움도 받을 수가 없어서...
지금은 배도 없으니.
남의 배를 탈 수밖에 없어.”
남자의 한탄 섞인 말을 듣는데, 미라키와 라엘은 가슴이 아팠다.
그 순간,
이레나가 다시 말을 꺼냈다.
“어쩌면 우린
서로를 지키려고 서로를 또 이용하는 건지도 모르죠.
내가 바라는 건
그냥… 이렇게라도 서로를 보호하는 거에요,
그리고, 서로 옆에 있어야 살 수 있기도 하고..."
남자는 헛웃음을 지었다.
“지켜? 날? 우리를?
그럼 날 왜 맨날 헐뜯고 때리는 거지?
누가 보면 어쩌려고?
넌 내가 숨 쉬는 것조차 너한텐 짜증이잖아.”
이레나는 더 이상 말은 하지 않고
입만 삐죽거리며
뛰뚱뛰뚱 무안함을 숨기려는 듯 장난스럽게 걸었다.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어떻게 보면,
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생활 속에선
아주 미세한, 한 부분의 상처가 더 큰 병이 되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도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라엘은 그제서야
자신이 이 마을에 처음 도착했을 때 느꼈던
이상한 평화,
붕 뜬 공기,
어색한 미소와 과한 친절과 웃음의 정체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곳은 사랑의 가면을 쓴 채
두려움을 숨기고
체면과 인정에 목마른,
진실 결여의 가식적인 마을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바람이 미세하게 방향을 틀기 시작했다.
“휭—”
공기 속에 낯선 소음이 스치고,
네 사람의 피부에 다른 시간의 결이 스며들었다.
어딘가…
분명히 존재하지 않는 시간의 그림자,
그것이 현실 위에 조용히 겹쳐졌다.
그 직후—
거센 돌풍처럼 파도가 몰아쳤다.
바다가 솟구치고, 모래가 뒤틀렸다.
네 사람은 본능적으로 서로를 감쌌다.
그리고, 고개를 숙이고, 팔을 뻗어 껴안았다.
몸이 뜨는 듯한 감각 속에서,
단 하나의 바람도, 파도도,
그들을 끌어가지 않기를 바랐다.
움직일 수 없었다.
이건 단순한 폭풍이 아니라,
무언가 더 깊은 ‘경계의 흔들림’이었다.
그리고—
모든 소리가 사라졌다.
정적이 찾아왔다.
무언가 부서진 뒤 남은 틈처럼,
숨이 끊어지고, 세상이 정지한 순간.
넷은 동시에 고개를 들고,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달빛은 사라졌고,
파도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하늘도 자취를 감춘 듯,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존재하던 모든 풍경이,
한 겹의 장막처럼 걷혀나간 느낌이었다.
그들은 어둠 속에 서 있었다.
빛도, 소리도, 온기도 없는 공간.
모든 감각이 무력해진 세계.
숨 쉬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마치 어딘가에 숨어 있는 맹수를
자극하지 않으려는 본능처럼.
움직이지 말아야 했다.
아니, 움직일 수 없었다.
그때—
달빛도 사라진 공간 한가운데서
희미한 불빛이 피어올랐다.
검은 고요 속을 찢듯,
고대의 기척 하나가 깨어나고 있었다.
미라키가 아주 작게 속삭였다.
“…누군가, 우리를 보고 있어.”
그들의 앞에는
공중에 교차된 두 개의 검이 떠 있었다.
어떤 힘도 이 균형을 깨지 못한 채,
검은 부유하며 서로를 겨누고 있었다.
균형은 완벽했고,
결정은 유예되어 있었다.
라엘은 숨을 삼켰다.
지금, 이게 무슨 공간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안에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숨결조차 흔들리면 깨질 것 같은 긴장감.
미라키도 무척 놀란 표정이었지만,
침착하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 두 개의 검, 닿을 듯 닿지 않는 거.
저건 말하지 못한 감정이야.
사랑이 멈추는 순간은,
싫어져서가 아니라…
상처 줄까 봐 조용히 도망가는 거지.”
그리고 말을 이어갔다.
“지금 우리는 환영을 보고 있는 게 아니야.
사람들의 마음 깊은 곳에서
침묵한 채 머물러 있던 진실이
터져나오려 하는 순간이야.”
라엘은 놀란 눈으로 미라키를 바라봤다.
그의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고,
마치 오래전 이곳을 지나온 사람처럼 보였다.
그런 미라키의 모습에 라엘은
불안했던 마음이 가라앉으며
심장의 떨림이 더 잦아지고 있었다.
이레나와 카이엘은 여전히 서로를 등진 채,
미라키의 말 뜻을 이해하려 애쓰고 있었다.
그때였다.
바다의 심연에서
서서히 퍼지는 기척 하나가
공기 속을 차갑게 흔들었다.
처음엔 그저 스치는 바람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곧—
그 존재는 '감지되는 무언가'에서,
‘도착한 누군가’로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라엘은 어둠 속에
작은 빛의 잔영이 일렁이는 걸 보았다.
그 빛이 모이자,
희미한 옷자락 하나가
수면 위를 스치듯 떠올랐다.
그리고,
눈을 가린 여인이 거기 서 있었다.
조용한 침묵 속에서,
그녀는 검들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리고, 바다를 울리는 듯한 슬픈 어조로 그녀가 처음 입을 열었다.
“사랑은 눈을 감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눈을 뜨고 마주할 수 있는 용기에서 시작된다.”
그녀는 프시케였다.
사랑을 시험했던 자.
진실을 보고자 했던 자.
그리고, 그 진실 앞에서 무너졌던 자.
그러나 결국,
사랑을 위해 다시 걸어 나아간 여인이었다.
그녀는 고통을 통과해
사랑의 본질에 도달했던 존재.
지금, 눈을 가린 채 서 있는 이유도
모든 진실을 알면서도
그 진심이 누군가의 내면에서
스스로 깨어나기를 기다리는 상징이었다.
그 순간,
그녀의 촛불이 흔들리며
바다 위에 한 장면을 비추기 시작했다.
황금으로 장식된 신전이 보였다.
그 곳엔, 촛불의 그림자를 받으며
한 여인이 잠든 신의 곁에 앉아 있었다.
프시케였다.
그녀의 손에는 촛불이 들려 있었고,
그 불빛은 에로스의 얼굴 위에
떨리는 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그녀는 보지 말아야 할 진실을 보고 싶어했다.
그 사랑이 진짜인지,
에로스가 정말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지—
그 불같은 의심은 결국
사랑을 시험하는 고통이 되었다.
촛농이 떨어졌다.
잠든 에로스가 눈을 떴다.
그의 눈에는 당혹스러움과 실망,
그리고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번지고 있었다.
“넌... 왜 나를 봤어?”
그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그 안에는 무너진 신의 자존과 슬픔이 담겨 있었다.
프시케는 입술을 떨며 말했다.
“사랑해서.
그런데 너무 무서웠어.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 순간 난,
그냥 사라질 것 같았거든...”
에로스는 한참을 말없이 프시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눈을 감았다.
“사랑은…
네가 나를 보는 걸 견딜 수 있어야 가능한 거야.
의심은, 네 눈이 아니라
네 마음이 날 외면한 거야.”
프시케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하지만 나는 정말 믿고 싶었어.
당신의 사랑을...
하지만…
당신이 너무 완벽해서,
내 사랑이 거기 닿을 수 없는 것 같았어.”
그녀의 손에서 촛불이 흔들렸다.
불빛은 마지막 숨을 토하듯 작게 깜빡였고,
그 순간—
에로스가 조용히 말했다.
“진짜 사랑은
나를 보지 않아도
날 느낄 수 있는 거야.
그걸 네가 잊었어도…
난, 널 사랑했던 걸 잊지 않아.”
그리고, 촛불이 꺼졌다.
이 장면은 현실의 이레나와 카이엘,
그들의 침묵 위로 겹쳐지듯 내려앉았다.
이레나는 마구 떨고 있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려는 듯,
진정시키려는 듯 눈을 계속 감고 있었다.
하지만 더는 회피할 수 없는 순간이었다.
모두가 자신을 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이레나는 조용히 눈을 떠
모두를 한 번 쳐다보곤 바다위의 프시케를 응시했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아주 작게, 그러나 태어나 처음으로
진심을 말하는 것을 본인도 잘 알고 있었다.
이 마을에서 태어나 계속 살면서 길들여 진 건,
진심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었다.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는 건,
신을 배신하는 일이라고
직감적으로 느끼며 살아왔었던 것이다.
그러니, 이 순간이 얼마나 고통을 수반하는 일인지는
카이엘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나도… 그랬어요.
언제부턴가 당신을 의심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그걸—
사랑이라고 착각했어요.
당신을 믿기보다는,
내가 사랑받지 못하는 기분에만 매달렸고…
그게 너무 두려워서,
자꾸 당신 탓을 하게 됐어요.
사실은…
잘못하고 있다는 거, 나도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걸 인정하는 게 너무 괴로워서
그냥 다—당신 잘못으로 돌렸어요.
그래야 내가…
덜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았으니까.
결국,
당신을 의심하면서
내 마음에 스스로 면죄부를 주고 있었던 거예요.”
…이레나는 끝내 말을 다 하지 못한 채,
입술을 꽉 깨물었다.
눈물이 먼저 터져나왔기 때문이었다.
그건 서럽다기보단,
너무 오래 눌러둔 감정이
마침내 허락받은 울음처럼 흘러나오는 눈물이었다.
카이엘은 그 눈물을 바라보며
자신도 무언가 안에서 천천히 무너지고 있음을 느꼈다.
그의 눈에도, 오래된 상처가 흐르고 있었다.
“당신이 날 떠날까 봐,
내가 먼저 당신을 가뒀어요.
말하지 않고, 물어보지 않고…
내 안에서 당신을 마음대로 해석했어요.”
그들은 서로의 눈을 처음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진심은 이제
눈보다 더 깊은 곳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라엘은 그들을 가만히 바라보다,
자신의 검을 꺼내 하늘을 향해 높이 세웠다.
마치, 신의 에너지를 받아들여
진실의 힘을 증명하고자 하는 기개로 보였다.
그 순간, 라엘의 검은 공중에서 찬란한 태양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검을 이레나와 카이엘의 발 앞에 꽂았다.
“이제, 두 사람이 선택해야 해요.
말하지 않는 침묵으로 계속 살지,
아님, 이 검 앞에서,
참회를 하고 서로를 사랑으로 바라볼지.
존중과 믿음으로 자신의 마음을 진심으로 표현할지,
서로의 아픔과 상처를 품고
매일 아름다운 말과 미소로 서로를 칭찬 할 것인지를...”
프시케는 이 모습을 마지막까지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참회의 눈물로 촛불을 부드럽게 껐다.
신전은 다시 바다로 녹아들었고,
달빛의 정적과 살랑살랑 찰랑이는 파도 소리만 남았다.
네 사람은 다시 각자의 생각에 잠겨
바다의 심연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고요 속에서,
라엘은 조금 전, 꽂아두었던 자신의 검을 바라보았다.
이 검은 싸움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거짓을 절단하고,
그 자리에 진심의 꽃을 피워주기 위한—
아주 조용한 결단이었다.
멀리서 파도가 조용히 속삭이고 있었다.
달빛은 다시 떠오르며,
모래 위에 진실의 흔적을 남겼다.
그 부부는 말없이 서로의 눈과 마음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엔,
사랑해요도, 미안해요도 아닌,
“지금부터 다시 시작해볼까요?”라는 말이
어딘가에서 작게 움트고 있었다.
미라키가 낮게 속삭였다.
“라엘, 지금이야.
이 마을의 거짓이 무너지는 순간.
이제,
라엘의 컵이 필요해.”
라엘은 눈을 감았다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 밤이 끝나면,
이 마을엔 감정의 바다에 진심이 흐를 거야.
누구도 가릴 수 없는—
진짜 마음들이.”
라엘도 이젠,
내면 깊숙이에서 울리는
깊은 진실의 힘을 굳게 믿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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