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엘은 석류 향이 풍기는 문을 지나며 문득 멈춰 섰다.
공기의 밀도가 확 달라짐을 느꼈다.
정적이 무게처럼 가라앉아,
걸음 하나조차 무례하게 느껴질 만큼의 고요한 공간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녀의 시야에 먼저 들어온 것은
두 개의 거대한 기둥이었다.
하나는 어둠을 품은 검은 기둥,
다른 하나는 눈 부신 빛을 머금은 백색 기둥.
그리고,
돌기둥 사이에 처진 흰색의 장막과
달과 십자가의 문양이 어우러진
고풍스럽고도 신비한 기운이 내려앉은 등판이 긴 의자였다.
라엘은 아무도 없다는 생각에
자신도 모르게 두 기둥을 만져보았다.
그것은 단순한 돌기둥이 아니었다.
그들은 각자의 영혼을 가진 존재처럼,
라엘을 지켜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 순간,
검은 기둥에서
서늘하고도 부드러운 숨결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여신이 천천히 형체를 드러냈다.
매혹적이면서도
슬픔의 비밀을 품고 있는 듯한 아름다움은
신비감으로 라엘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그녀는 말없이 라엘을 응시하더니, 입을 열었다.
"나는 심연의 여신, 에레티아다.
너는 나를 처음 보겠지만, 나는 오래전부터 이 자리에 있었다.
말하지 못하고 표현하지 않은 감정들,
기억에서 사라진 아픔들...
그 모든 것을 품고
사랑으로 승화할 수 있는 존재가
나, 에레티아다."
그러고는 눈을 감았다.
잠시 뒤, 다시 말을 잇는
그녀의 눈가가 촉촉 젖어있음이 보였다.
"그런데, 오늘에서야 네가 내 앞에 섰구나.
그 오랜 시간을 버텨낸 뒤에.
하지만, 잊지 말거라. 절대로...
신의 은총이 있었음을...."
에레티아는 별빛 흐르는, 의식 너머의 밤을 지키는
지혜를 품은 여신이었다.
그녀의 머리칼은 달빛의 숨결을 머금은 안개처럼 흐르고,
눈동자는 끝없이 내려가는 깊은 우물 같았다.
그녀는 라엘의 곁으로 조용히 다가와 말을 이었다.
"넌, 이제 많은 것을 지니고 있어.
모든 비밀이 쓰 문서와
그 비밀을 해독할 수 있는 4원소도 품게 되었지.
그 용기를 내가 높이 사마.
너의 등짐에서 그 문서를 꺼내어라."
라엘은 멈칫했지만, 이내 등짐을 내려
서고에서 발견한, 오래된 문서를 꺼냈다.
사실, 그녀는 이 문서를 한순간도 잊은 적이 없었다.
다만, 펼쳐볼 용기가 나지 않았을 뿐.
이제는 더 이상 피할 수 없었다.
그 문서는 그녀의 손에서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심장 박동 같은 느낌으로....
그 순간,
백색 기둥에서도 빛의 결이 맥처럼 퍼져 나왔다.
공기가 갑자기 뜨거워지며
태양신 같은 한 남신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는 양손을 천천히 들어 올리며 말했다.
"나는 칼레온. 빛과 질서의 신이다.
네 이름은 무엇이냐?"
라엘은 깊은숨을 들이쉬고, 또렷하게 답했다.
"제 이름은 라엘입니다. 칼레온 신이시여!
저는 지금 떨고 있습니다.
이 여정에서 제가 마주해야 할 진실과,
제가 어떤 길을 걸어야 하는지...
알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그녀는 혼자였다.
미라키도 곁에 없었다.
그러나 이 순간만큼은
그녀 스스로 모든 걸 감당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칼레온은 그녀를 한동안 바라보다,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래, 네가 두려워하는 마음을 나도 느낄 수 있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어둠 속 낯선 곳에 홀로 선 느낌은,
도망치고 싶은 본능이 너를 앞을 가로막겠지.
하지만, 지금 넌 잘 이겨내고 있다.
그것이 바로 여정의 시작이기도 하다.
하지만 너는 가장 절실한 네 마음을 내게 보였다.
그러니 나도 너에게 되묻겠다.
라엘, 네가 생각하는 그 여정은 무엇을 찾기 위함인가?”
그는 부드럽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 저는 모든 진실을 찾고 싶습니다.
답답합니다. 너무나도....
더불어 제 본연의 모습을 찾고
모든 수수께끼를 풀어내고 싶은 바람뿐입니다."
라엘의 대답에 칼레온은 미소를 며 말을 계속 이어 나갔다.
“진실은 누가 대신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다.
빛이 어디를 비출지는 너의 발걸음이 결정한다.
너는 이미 시작했으니,
그 발걸음을 두려워하지 마라.”
그의 목소리는 바람처럼 부드러웠고,
그 속엔 길을 비추는 고요한 힘이 담겨 있었다.
그의 말은 라엘 안에 깊은 울림을 남겼다.
검은 기둥과 흰 기둥.
두 존재가 그 속에 왜 있는지
라엘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살아 있는 신이었고,
세상의 비밀을 다 꿰뚫고 있는 것처럼도 보였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차마 드러낼 수 없는 진실이,
경외감으로 변해
공기 속을 맴돌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기운은 부딪히지 않았다.
섞이지도 않았다.
서로를 마주했지만, 끝내 이해는 없었다.
그 한가운데, 기둥 사이에 놓인 의자.
그 자리는 비어 있었지만,
에너지들은 그 앞에서 스스로를 고르게 맞춰가고 있었다.
그 의자의 의미를 아는 이는 없었다.
그저,
그 앞에서 흐르던 기운들이
조금씩 균형을 찾아가고 있었을 뿐...
마치,
아무 말 없이 모든 것을 지켜보는 이가 있는 것처럼.
검은 기둥에서는 끝없는 내면의 심연이 흘러나왔다.
슬픔, 수용, 망각, 침묵, 본능 그리고, 사랑과 욕망.
그리고 존재의 기원을 감싸는 밤의 온기.
단어로 옮겨지지 않은 감정들.
보아즈.
끝끝내 에레티아는
문서를 라엘이 직면하도록만 하고
더 이상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다만 라엘이 긴 시간을 참고 버텨온 것에 대한 포옹을 해주었다.
라엘은 그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뜨거움에 엉엉 울었다.
그때 라엘은
이제 모든 것이 끝나고 다시 시작됨을
그 에레티아의 품속에서 깨우치고 있었다.
라엘이 에레티아의 품에서 평정을 찾으려는
바로 그 순간,
칼레온의 몸에서
강렬하고도 날렵한 빛들이 뿜어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라엘의 몸을 공격하듯 감싸기 시작했다.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라도 하는 듯.
지식, 명확함, 창조, 지시, 판단, 결정, 실행....
그러나 그 중심축엔 태양신의 뜨거운 열정이 있었다.
길을 알려주고자 하는 순수한 열망.
야긴.
그는 라엘의 눈을 통해
그녀의 모든 것을 관통하려는 듯,
강한 어조로 말했다.
"너의 나약함은 이제 버려라.
그리고, 넌 이제 예전의 네가 아니다.
너를 똑바로 직시하고
네 판단과 결정을 믿고 행동하라.
그래야만, 네가 원하는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라엘은 그 보아즈와 야긴 사이에서,
두 신 사이에서...
모든 지식들이 그녀의 뇌리를 비추고 있음이 느껴졌다.
모든 이분법을 초월한 그 한가운데에서.
이 둘은 싸우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척추를 지탱하는 두 날개였다는 것을...
선과 악도 아니었다.
옳고 그름도 아니었다.
이해와 수용.
말함과 침묵.
깊이 잠긴 무의식과 명징한 자각.
진실이란 어느 한쪽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둘 사이를 오롯이 통과하는 용기에 있다는 것을.
그 순간,
두 기둥 사이 장막 너머에서 은은한 석류 향이 흘러나왔다.
익숙한 향이었다.
처음, 이 공간에 발을 들였을 때 맡았던,
잊고 있던 그 향.
라엘은 문득,
자신이 잠시 미라키를 잊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 미라키.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짧은 그리움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그 순간,
신들의 형상은 사라지고,
보아즈와 야긴,
두 기둥은 그저 태연한 돌기둥으로 남아 있었다.
너무나 진귀한 이 장면 속에서
라엘은 피식 웃음이 나올 뻔했다.
현실과 환상,
신성과 인간 사이의 균열이 아른거렸다.
그리고 그때였다.
고요를 가르며 장막이 천천히 젖혀졌다.
그 안에서,
푸른 가운을 걸치고,
빛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부드럽게 흐르는
순결한 사제복을 입은 여인이
토라를 품에 안은 채 걸어 나왔다.
그녀의 기척만으로도,
공기는 지혜의 숲으로 바뀌었다.
말이 없었다.
그러나 그 고요는
이미 모든 것을 말하고 있었다.
라엘은 넋을 놓은 채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무릎을 꿇고 싶다는 충동,
자신의 모든 죄와 고통을 고백하고 싶다는 마음이
가슴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올랐다.
그녀는 진짜 여사제였다.
라엘은 손에 쥔 종이를 더욱 꼭 움켜쥐고,
조심스레 두 기둥을 지나 여사제의 앞으로 나아갔다.
예를 갖추어 몸을 낮추며,
진실을 드러낼 준비가 되어 있음을 조용히 전했다.
여사제는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머금으며
라엘의 예를 받아들이는 모습을 살짝 비췄지만,
여전히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하지만 라엘은
그 침묵 속에서 하나의 신호를 감지하고 있었다.
베일에 싸인 자신의 과거가 조금은 드러날 것임을...
여사제는 장막 앞에 놓인
달의 의자에 앉으며
품에 안은 토라를 펼쳤다.
그리고, 라엘을 조용히 응시했다.
그리고,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라엘은 그 의미를 본능적으로 이해했다.
이제, 그녀가 지니고 있는 문서를 직면할 시간이 다가왔음을.
여사제의 뒤편, 장막 너머로 희미한 빛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사제는 라엘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것은 초대였다.
라엘은 여사제의 눈만을 응시하며 천천히 발을 내디다.
그리고,
더 깊은 곳으로,
더 오래된 기억의 심연으로 빠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여사제가 장막을 걷자,
그곳엔 바다처럼 고요한 풍경이 펼쳐졌다.
그러나 그것은 물이 아니었다.
고요한 달빛 아래 반짝이는 수정의 바다였다.
마치 여사제가 쓰고 있는 관의 연장선처럼,
그녀의 의식이 공간으로 확장된 듯한 풍경이었다.
그 수정 아래에는
심연에서 떠오른 감정의 파편들이 흩날렸고,
이름 없는 이유의 잔영들이
검푸른 꿈의 가루들과 엉켜
자기 존재를 찾지 못한 채 유영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조각은
여물지 않은 석류처럼 굳게 닫혀 있었지만,
어떤 것들은 금빛의 진실을 머금고
라엘을 향해 손을 흔들며
몸부림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날 꺼내줘, 제발..."
여사제는 말없이 손을 뻗어 그중 하나의 조각을 가리켰다.
라엘은 달빛의 광선이 머무는 그 조각을 향해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발을 내디뎠다.
그 순간, 수정 바닥 아래에서 금빛 파문이 번져나갔다.
표면은 서서히 투명해지며,
마치 고대의 스크린이 펼쳐지듯 한 장면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희뿌연 안개가 낀 회랑.
소녀 라엘이
서고의 창문 앞에 서서 까치발로 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그 너머, 고대의 탁자 위에 놓인 문서에서는
금빛의 활자들이 분주히 움직이며
뭔가 적어 내려가고 있었다.
사람이 쓰는 것이 아닌,
어떤 힘으로
신의 계시가 기록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라엘은 처음 보는 이 장면에서
더 강한 유혹을 느끼고 있었다.
확인하고 싶은 충동에,
라엘이 서고의 문을 들어서는 순간...
그 장면은 차르르 사라져 버렸다.
그 장면을 본 라엘은
여사제를 본능적으로 바라봤다.
여사제는 이 장면에 대해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이어지지 않은 얘기를
라엘에게 들려주길 원했다.
그 순간,
다시 서고 안으로 들어서는 라엘의 모습이 보였다.
라엘은 혼란스러웠다.
지금의 감정이
저 수정 아래 라엘의 감정과 뒤섞여
어느 것이 진짜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라엘은 그 금빛의 활자들이
자기를 부르고 있다는 확신에 두 눈을 반짝였다.
하지만 그 방은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금기의 공간이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라엘은 그 방에 초대된 듯한 느낌을 받고 있었다.
마치 여사제가 그녀를 부드럽게 이끈 것처럼.
'아! 무엇이 진짜인가?'
라엘은 또 여사제를 바라보며
도움을 청하는 눈빛으로 무슨 말을 건네려 하였지만,
여사제는
라엘의 눈을 피하며 허공을 향해 눈을 감았다.
라엘은 체념하며 다시 수정 바다에 눈을 돌렸지만,
더 이상 그 옛날 서고에서의 라엘은 볼 순 없었다.
라엘은 애가 탔다.
저 서고에서 본 그 문서가
혹시 지금 자신이 들고 있는 문서인지,
아니면... 진짜 이 문서의 정체는 무엇인지...
라엘은 자신의 문서를 다시 펼쳐 보았다.
해독이 필요한 활자들이었지만,
황금빛의 글자도 아니었다.
그때, 수정의 표면이 다시 맑아지며
크리스탈의 빛을 뿜어냈다.
그리고, 어떤 파편이 라엘을 보며 깔깔거리더니 휙 사라졌다.
그러면서, 라엘의 눈 앞에 펼쳐진
하얀 대저택과 아름다운 정원.
완벽하게 지어진 저택이었다.
라엘의 가문과도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라엘은 그 정원 앞에 서 있었고,
손엔 조그만 금속 조각을 쥐고 있었다.
비밀의 열쇠처럼 보였다.
라엘은 그것을 저택을 향해 던졌다.
짧은 충돌음, '딱.'
갑자기 하얀 저택이 위에서 아래로,
한 장씩 찢기듯 천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건물은 울부짖는 듯한 소리를 내며 점차 가라앉고 있었고,
그 안에서 미라키가 황급히 뛰쳐나왔다.
먼지를 뚫고 라엘을 향해 손을 휘저으며 달려오던 그는,
눈물에 젖은 얼굴로 무언가를 외치려다,
결국 소용돌이치는 먼지 속으로 사라졌다.
그 장면 앞에서 라엘은 무릎을 꿇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자신이 무엇을, 누구를, 얼마나 망가뜨렸는지.
하지만, 라엘 역시 인정할 수가 없었다.
자신은 현재, 아무것도 제대로 기억하는 것이 없었기에...
라엘의 눈물이 고요하게 수정 위를 적셨고,
그 순간, 전혀 다른 장면이 펼쳐졌다.
꽃들이 만발한 정원.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들,
서로를 향해 웃고 있는 라엘과 미라키의 어린 시절.
그들은 너무도 순수하고 아름다웠다.
그 기억과 방금 전의 파괴된 장면은
너무도 극명하게 대조되었고,
라엘의 마음은 미칠 것 같은 회오리 속에서
빙글빙글 돌고만 있었다.
그리고, 단 하나의 진실만이 그녀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라엘, 넌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지었어. 모든 걸 망가뜨렸어."
라엘은 여사제를 바라보았다.
입술을 떼었지만, 그 어떤 말도,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여사제는 천천히 라엘 곁으로 다가와
무너져 있는 라엘을 일으켜 세우며 안아주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라엘… 내가 너에게 전할 수 있는 건 단 하나.
넌 이제 모든 걸 할 수 있는 때에 도달했다.
신도 알고 계시지만,
계율은 그 누구도 어길 수 없다.
그것이 만약 너의 호기심과,
한순간의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하더라도...
너에겐 다행히 영원한 추방이 아닌,
천 년의 벌만 내려졌다.
넌 아마도 가혹하다고 여기겠지.
하지만, 너로 인해 미라키는 더 큰 벌을 자처했다.
하지만 이제, 천 년의 시간은 채워졌고, 지나갔다.
그래서 너는 이 자리에 설 자격을 얻은 것이다.
해답은 네 손 안에, 네 마음 깊은 곳에 있다.
그리고, 미라키의 큰 사랑과 희생이
널 이곳까지 끌어올렸다는걸,
절대 잊어선 안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사실을
미라키에게 절대 발설해선 안 된다.
어떤 죄책감과 책임 같은 조건으로
네가 미라키를 품게 되면,
너흰 영원한 추방이 아닌,
존재 자체를 잃게 될 것이다.
그래도, 내가 네게 일러 주는 건,
신의 허락이 있어서이다.
네 마음속, 사랑의 진주를 보셨기에.
난 네게 전달했고,
앞으로의 네 마음은
연꽃보다 더 청아하고 순결해야 함을 잊지 마라."
여사제는 그 말을 끝으로 다시 장막 속으로 사라졌다.
그 순간, 라엘은
뜨거운 눈물이
얼굴을 따라 계속 흐르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이 눈물은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복잡함이었다.
그리고, 여사제의 말에서 라엘은
더 어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왜냐면, 자신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낱 내가? 어떻게? 이 모든 걸?'
그때,
수정의 바다도,
달빛도 모두 걷히고,
라엘 앞엔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 미라키가 보였다.
그리고, 그 공간엔 석류가 만발해 있었고,
달큰한 향이 라엘의 마음 깊숙이 스며들고 있었다.
라엘은 용기 내 한 걸음 먼저 다가가,
가슴 속에서 무언가를 끌어올리듯,
"…미라키."하고
이름을 나지막 불렀다.
그 한마디에 모든 혼란스러움이 와르르 무너져 버렸다.
미라키는 다가와 그녀의 손을 감쌌다.
"돌아왔구나. 힘들었지?"
그의 목소리는 따뜻하고, 깊었다.
라엘은 미라키의 눈을 조용히 응시했다.
미라키도 라엘의 눈을 바라보았다.
마주 보는 그 시선을 따라 흐른 깊은 마음엔,
지금 아무것도 없었다.
오롯이 둘의 기쁨만 웃고 있었다.
그리고, 라엘의 마음에서 피어오르는 단 하나의 진심.
"이제… 너를 알고 싶어. 그리고, 널 지켜주고도 싶어. 나도..."
미라키는 그 눈빛을 읽어낸 것인지
더 힘껏 라엘의 손을 감싸 쥐었다.
멀리, 한 점의 빛이 두 사람을 향해 떠올랐다.
그리고, 하나의 길을 길게 비추었다.
미라키와 라엘은
그 빛을 따라 손을 잡고 걸었다.
둘의 입가에선,
미소가 끊임없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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