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로 소설 : 미라키와 라엘의 사랑

💧《물의 아이, 마음의 그릇을 빚다》 – 컵 시종의 이야기💧

초영Tarot 2025. 3. 29. 23:18

라엘은 마법사의 정원에서 모든 시험을 통과하고 난 뒤,
또 하나의 문을 지나,
시간을 가로지르는 듯한 감각 속에서
미라키와 함께 알 수 없는 낯선 장소에 발을 디뎠다.

지나온 풍경들과는 결이 다른 아름다움이 넘실대고 있었고,
형용하기 어려운 빛과 어우러진 섬세한 숨결이
그곳 전체에 조용히 스며 있는 듯했다.

그 결은 마치 동화 속 한 장면처럼 비현실적으로 다가오며,
선명함이 아닌,
빛에 물이 든 듯, 물이 빛을 품은 듯한
신비의 세계로
그들을 초대하고 있었다.

그녀는 걸었지만,
실제로는 걷고 있지 않은 느낌이었다.
몸은 가벼운 깃털 같았고,
푸르른 풀잎들은 그녀를 감싸듯 살랑이며
저절로 움직이는 것 같은 착각 속에 휘말리게 하는
묘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을 기죽게 만들던 신들과의 만남부터
4원소를 얻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했던 순간까지,
그 모든 무게가 오싹할 만큼 또렷한데.
지금은 그 모든 감각과는 완연히 다른 차원으로 느껴지며
마음이 점점 확장되고 있다.

펜타클을 품에 안았을 때의 그 황홀한 기쁨조차
이곳에선 하나의 기억으로만 남아 있었다.
지금 그녀의 감정은,
어딘가 방랑자 같은 낯섦 속에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두려움보다는 설렘이 먼저 라엘을 노크하고 있다.

그 이유는 분명했다.
곁에 있는 미라키.
그는 한결같이 말없이 함께 걸었고,
그 존재 하나만으로도 라엘의 숨소리는 안정되었다.

그렇게 힘들게 획득한 4원소보다
자신의 시선과 마음이 자꾸만
미라키에게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라엘은
어딘가 자신이 모자란 듯한 기분에 피식 웃었다.

그리고, 보았다.
마음 한가운데에 일고 있는 작은 물결을.....



 


미라키와 라엘이 그렇게 봄의 기운을 따라 걷다 보니,
안개가 부드럽게 내려앉은 듯한 작은 연못이 나타났다.
그들은 조용히 연못에서 들려오는 듯한 멜로디를 따라 가까이 다가갔다.
물비늘처럼 빛나는 공기 속에, 한 소년이 앉아 있었다.
그는 작은 컵을 손에 쥔 채, 노래를 부르며 조심스럽게 연못의 물을 담고 있었다.

그의 손놀림은 기도하듯 조심스러웠다.
마치 빛의 파편을 모으는 듯,
소중한 생명의 숨결을 잃지 않으려는 듯.
그렇게 경건하게 자기만의 의식을 행하고 있는 듯했다.

소년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긴 속눈썹 아래 투명한 눈동자, 맑은 미소.

마치 천사의 형상을 지닌 미소년에겐 물의 영롱함이 묻어 있었다.


물가의 소년은 그냥 하나의 조각상처럼 느껴질 정도로

신비로운 천상의 기운이 느껴졌다.

어쩌면 그는 진짜 천사일지도 몰랐다.

벌을 받고 지상에 내려와,

다시 맑은 영혼과 감정의 하모니를 배우고 있는 존재처럼.

 


 


라엘은 조심스럽게 걸음을 멈췄다.

하지만, 소년에게 그 어떤 말도 쉽게 꺼낼 수 없었다.

소년의 노래가 너무 경이로서,

라엘의 말 한마디로
이 모든 신성한 기운이 갑자기 사라질까에 대한 두려움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라엘은 미라키의 호기심 가득한 눈을 살며시 바라보았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이건… 뭔가 특별한 시작이야, 그치?’
라엘의 눈빛 속엔 그런 속삭임이 스며 있었다.

미라키는 미소 지었다.
라엘만이 읽을 수 있는, 아주 미묘하고 조용한 미소.
그 미소 하나로, 라엘의 심장은
물 위에 떨어진 꽃잎처럼,
부드럽게 또 떨리고 있었다.

그들은 노래가 잠깐 멈춘 틈을 타
조심스럽게 소년 곁으로 다가가 말을 건넸다.

“그건… 그냥 물이 아니야?”
컵을 들여다보고 있던 소년은,
라엘을 올려다보며 부드러운 미소의 어조로 답했다.

“이건 감정이야.
흘려보내면, 조금씩 사라져.
하지만, 고요히 가라앉은 감정에 상처를 주면…
다시 맑아지기까지 오래 걸려.”

그 말은 바람결처럼 미라키의 귀에도 닿았다.
그는 라엘의 곁에 서서, 조용히 그 말을 되새기듯 중얼거렸다.
고요히 가라앉은 감정에 상처를 주면,
다시 맑아지기까진 오래 걸려....

소년은 자신이 들고 있는 컵에 "후~!" 하고 긴 숨을 불어 넣더니
새로운 컵 하나를 만들었다.
아주 조그마한, 진빛이 흐르는 컵이었다. 

그리고, 그 컵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너도 한 번… 네 마음을 여기 담아볼래?”

연못과 소년의 온 몸에서 춤추고 있던 빛이
잔 속으로 들어와 맴돌고 있었고,
마치 컵은 ‘지금, 이 순간의 감정’만 담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라엘은 잠시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컵을 받아 연못의 물을 조금 떠올렸다.
그 순간,
그녀의 심장이 요동쳤다.
가슴 깊숙이 숨겨두었던 감정들이 물결처럼 밀려오며,
살짝 어지러움이 느껴졌다.

그 떨림은 그대로 컵 속에 스며들었고,
잔잔한 물 위엔 멈추지 않는 잔물결이 피어올랐다.
그 흔들림은 마치, 그녀 내면의 떨림이 물 위에 그려진 듯했다.

하지만—
컵도, 물도, 마음도, 감정도…
라엘에게는 아직 낯설고 버거운 존재였다.
그녀는 그것들을 조심스럽게 품으려 했지만,
두려움은 여전히 그녀의 손끝을 떨리게 했다.

그때, 발끝이 돌부리에 걸렸다.
컵이 손에서 미끄러지며 허공을 가르더니,

“…”

맑은소리와 함께,
컵은 땅에 부딪혀 금이 가고
그 안의 물은 사방으로 흩어지며,
공중으로 증발하듯 사라졌다.

소년은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다
고요한 움직임으로 다가가
흩어진 조각들을 하나하나 주워 들며 말했다.

“괜찮아.
흩어진 감정은 자연에서 치유되어
언젠가 다시 네 안으로 돌아올 거야.
하지만…”
소년은 한 조각을 손에 쥐며 조용히 덧붙였다.
영원히 너를 잊는 감정도 있어.
그것들은 그렇게 보내면 돼.
모든 것을 쥐고 있을 순 없어.”

라엘은 조각난 컵을 바라보며 낮게 중얼거렸다.
“감정은… 너무 다루기 어려운 아이 같아.”

소년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이야기하듯 말했다.

“감정은 매번 모양이 달라져.
처음처럼 투명하진 않을 수도 있어.
조금은 탁해지거나, 어딘가 울퉁불퉁해질 수도 있지.
하지만 그건,
그 감정이 시간을 지나 살아남은 증거야.
조금 달라졌을 뿐—
그건 여전히 진짜야.”

라엘은 말없이 그 조각들을 손에 쥐었다.
손끝이 살짝 아려왔지만,
그 아픔은 오히려 감정이 여전히 살아있음을 알려주는 듯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미라키가
조용히 라엘 곁에 다가와 앉았다.
그는 라엘의 손에서 금이 간 조각 하나를 받아 들고,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그래도…
너는 네 안의 모든 감정을 소중히 여기고 있어.
그 마음이면… 정말 충분해.”

라엘은 연못을 향해 살며시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작은 연꽃 하나가 천천히 피어오르고 있었다.

소년은 미소 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감정은… 그렇게 또다시 태어나는 거야.
같은 모습은 아니겠지만,
네가 진심으로 품은 감정은
언젠가 다른 모습으로, 다시 너를 찾아올 거야.”

그리고, 말을 계속 이어 나갔다.




“아주 오래전,
어떤 연못에 에코라는 존재가 있었어.
사랑을 말하고 싶었지만,
늘 상대의 말 끝자락만 따라갈 수밖에 없었지.
그녀는 점점 외로워졌고, 결국 목소리만 남았어.

그러다 나르키소스라는 소년이 그 연못을 찾아왔어.
그는 자신의 얼굴을 보고, 그 모습에 빠져들었지.
하지만 손이 닿는 순간마다… 그 얼굴은 물결에 흩어졌어.
그 이야기가 끝나자, 정원 안개 사이에서 누군가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투명한 푸른빛 외투를 입은 소년.
그의 눈빛은 깊었지만, 피로감에 지쳐있었다.
나르키소스였다.

“나는 나 자신에게만 감정을 쏟았고,
그 어떤 마음도 흘려보내지 못했어. 나만 보였어.”

그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더군다나 난 사랑을 받아들이지도, 인정하지도 않았어.
내 얼굴만 바라보다…
나를 비추는 연못마저 등을 돌렸어.”

그는 라엘을 바라보았다.
“너는… 잊지 마.
감정은 흐르게 해야 해.
머무르게 하지 말고.
그래야만… 상처도 사랑도, 살아남을 수 있어.”

컵 소년은 라엘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무슨 말을 속삭이려는 듯이.

그의 목소리는 따뜻했고, 섬세했다.

“넌 감정의 존재성을 알게 되었어.
이제 그걸 품고, 진정한 지혜를 품으러 가야 해.”

라엘은 소년이 건네는 말의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러면서 손이 미세하게 떨리며,
다음 여정에 대한 두려움이 본능적으로 엄습하는 것을 느꼈다.

그때, 미라키가 조용히 다가와 그녀의 손을 잡았다.
따뜻한 온기가 손끝을 타고 흘러들었다.

라엘은 이유를 알 수 없는 감정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눈을 감자, 주르륵 한 줄기의 눈물이 흐르며
마음에서 뭔가가 빠져나가는 느낌을 받았다.
차분해지면, 평온함이 다시 깃들었다.





라엘은 이내 컵 소년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 안에는
어린 슬픔과 어른스러운 갈망이 함께 깃들어 있었다.

“너는 꿈이 있니?”
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있어.
나는 언젠가, '진실한 사랑'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을 만들고 싶어.

아무도 깨뜨릴 수 없고,
누구나 안전하게 행복만을 담을 수 있는 컵을…
나 같은 아이도, 아프지 않게.
라엘은 그 말에 마음이 울렸다.

그녀는 가슴에 손을 얹고, 조용히 집중했다.
그리고, 신들에게 받은 완드와 펜타클을 어루만지자
불씨와 흙이 그녀의 손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소년이 원하는 컵을 빚을 수 있게 도와주는 신의 에너지였다.

그녀는 시종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걸 받아. 아직 완전하진 않지만…
너의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신의 은총이야.

작은 불의 결정과 흙의 가루가 라엘의 손 위에서
소년의 손 위로 옮겨가는
라엘의 첫 번째 나눔의 사랑이 실현되는 운명적 순간이었다.
소년은 놀란 듯 바라보다,
조심스럽게, 그리고 아주 소중하게 받아들였다.

“고마워… 나, 꼭 사랑으로 컵을 만들게.
그리고, 그 사랑의 컵을… 너희에게도 꼭 보여주고 싶어.

그는 마지막으로 라엘을 바라보며
아주 조용히, 비밀처럼 속삭였다.

“네 옆에 있는 저 사람은… 네 감정의 거울이야.
네가 무너질 때마다 대신 모든 걸 감당하고 널 다시 일으켜 세우는 사람.
아직 기억 못 하겠지만… 언젠가 알게 될 거야.
너희는… 오래전부터, 한 마음이었어.
라엘은 그 말에 숨을 멈췄다.

심장이 가슴안에서 서서히 조여드는 듯했고,
한참을 잊고 지냈던 감각들이
가슴 깊은 곳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 연못의 안개보다도 더 부드럽게,
하지만 깊고 단단하게 그녀를 꿰뚫었다.

'낯설지 않아. 
그런데, 왜 가슴이 이렇게 아픈 걸까…

그리고, 꿈인지, 기억인지 알 수 없지만…
늘 그녀를 위로하고 토닥토닥해주던
그 손길의 감촉이 이 순간에도 그대로 전해졌다.

그녀는 그 순간, 미라키의 손을 꽉 잡았다.
떨림을 숨길 수 없었다.
하지만, 입술을 꼭 다물었다가, 용기 내 속삭였다.
“미라키… 나…”
감정은 목울대까지 차올랐지만,
아직 형체를 갖지 못한 마음은 둘을 맴돌고만 있었다.

“마치…
정말 오랜만에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온 것 같아.
그곳은 너의 곁인 것 같아.”

그녀는 스스로에게도 말이 되지 않는 감정에 당황했지만,
어딘가 끌리는 그 무언가를 부정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미라키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이런 라엘의 솔직함에 감사함과 안도감을 느꼈다.
그리고, 라엘을 살포시 안으며 등을 토닥거렸다.
미라키는 더 뜨겁게 포옹하고 싶었지만, 아직은 그럴 수 없었다.
모든 건, 신의 영역이었기에...

‘확신은 없어. 하지만… 믿고 싶어. 이 떨림을. 이 사람을.’
그녀의 눈동자엔 슬픔과 떨림, 그리고 이상할 만큼
선명한 그리움이 깃들어 있었다.

그리고, 라엘의 믿겠다는 의지의 표출
수수께끼를 푸는 지혜의 한 조각이 주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 순간—
연못의 가장자리에서부터 아주 천천히
작은 빛의 입자들이 피어올랐다.

그건 물안개 같기도 했고,
한없이 가벼운 숨결 같기도 했다.
하지만 분명히 느껴졌다.
그건 라엘의 감정이었다.

말이 되지 않았던 울컥거림,
처음 같지만, 너무도 익숙했던 그리움이
공기 속으로 번져나가며
형체를 갖기 시작했다.

소년은 그 결을 조용히 바라보다가,
속삭이듯 말했다.
“이제 지혜의 문이 나타나고 있어.
네 감정의 결백은… 이 문을 여는 열쇠니까.
너무 잘했어.
내가 여기에서 기다린 이유이기도 해.”

그 말이 끝날 즈음,
흩날리던 빛들이 하나의 곡선을 그리며
석류의 향기를 풍기는 문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건 마치 마음의 아픔이 꽃으로 환생한 것 같은
신성하고 고결한 
라엘만을 위한 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