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라키와 라엘의 이야기 – ‘운명의 첫걸음’
"그는 경계에 존재하는 자였다."
빛과 어둠, 신과 인간, 시간과 공간, 그 모든 것을 가로지르는 존재.
신이 아니면서, 신을 능가하는 자.
운명을 강요하지 않지만, 흐름을 조율하는 자.
그의 이름은 미라키.
천 년을 거슬러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오랫동안 지켜보았다.
수많은 인간들이 운명이라는 강물 속에서 흘러가는 것을...
때로는 잔잔하게, 때로는 거센 폭풍에 휩쓸려.
그러나 결국, 모두 정해진 바다로 흘러들었다.
그 흐름을 거스르는 자는 지금껏 없었다.
그들은 모두 순응했다.
자신의 삶이 한낱 모래알처럼 무력하다는 것을 알지도 못한 채.
시간이 정해준 궤도 속에서 태어나고,
주어진 길 위에서 걸으며,
흔들림 없이 스러져 갔다.
라엘도 다르지 않았다.
그녀 또한 정해진 삶을 살았다.
태어나고, 그 길을 걷고, 언젠가 이 세계 안에서 사라질 존재.
그것이 그녀의 운명이었다.
그럴 줄 알았다.
그러나—
미라키가 다시 나타난 순간,
그녀의 운명은 금이 가기 시작했다.
천 년.
미라키는 그 오랜 세월 동안 기다려왔다.
이 흐름 속에서, 단 하나의 균열이 생길 때를.
그 균열이,
바로 라엘이었다.
운명을 개척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그것은 이제, 그녀가 될 수도 있었다.
라엘은 지루한 평온함 속에서 생각에 잠겨 걷고 있었다.
눈앞의 일상은 고요했지만,
그녀의 내면은 뭔가 알 수 없는 갈망으로 들끓고 있었다.
이곳에서 태어나, 자라며,
가족들과 친지들 곁에서 같은 하루를 반복하다가,
기도 소리와 함께 조용히 생을 마감한다.
이곳 사람들에게 삶이란, 언제나 그래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쩌면 처음으로.
라엘은 이 흐름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그 감정은 낯설었다.
마치 그녀의 안에서 어떤 존재가 깨어나려는 것처럼.
그날, 그녀는 한 장의 종이를 발견했다.
오랫동안 방치된 숲 속 길 한 모퉁이,
오묘한 빛이 흘러나오는 낡은 서고.
라엘은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리듯 문을 밀고 들어갔다.
한참을 걸어 들어가자,
구석 어딘가에서 희미한 반딧불 같은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빛이 흘러나오는 곳은 해묵은 목제 상자.
호기심과 두려움이 뒤섞인 채, 그녀는 뚜껑을 열었다.
그 안에는 한 장의 종이가 있었다.
지도인가? 편지인가?
그녀는 조심스럽게 펼쳤다.
종이는 낡았지만,
푸른 황금빛을 머금고 있었다.
손끝이 닿는 순간—
온몸이 빛으로 관통되는 듯한 감각.
그녀는 숨을 삼켰다.
순간적으로 뇌리를 스치는 찌릿한 감각.
마치 오래전 지워진 무언가가
피부 아래에서 다시 살아나는 듯한 느낌.
눈앞에 떠오르는 흐릿한 형상.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아니, 절대 본 적 없는 것.
익숙하지만 낯설고,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전혀 알지 못하는 것.
‘…뭐지?’
눈을 감으면 더 선명해지고,
눈을 뜨면 사라지는 환영.
그것은 기억인가? 꿈인가? 아니면…
라엘은 머리를 흔들었다.
그러나, 이 묘한 이질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때,
느닷없는 바람이 불었다.
닫혀 있던 서고의 문이 강하게 열리며,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태양빛이 그녀를 덮쳤다.
그리고—
끝없는 기다림의 끝에서, 미라키가 그녀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존재는 신화 속 한 장면 같았고,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는 형체는 라엘에게 두려움과 경외감으로 뒷걸음치게 했다.
미라키의 눈동자는 깊었고,
그 속에는 헤아릴 수 없는 시간과,
지금 이 순간을 위해 기다려온 운명의 흐름이 서려 있었다.
그는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말했다.
"라엘… 이제 선택해야 해."
그녀의 심장이 멎을 듯 뛰었다.
미라키는 천천히 손을 들었다.
그의 손끝이 공기를 가르자, 눈앞에 두 개의 문이 떠올랐다.
하나는 익숙한 세계였다.
가족, 친구, 안정적인 일상, 따뜻한 온기.
그리고 또 하나는 완전히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
빛이 가득한 문, 그리고 끝없는 계단.
미라키는 두 문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이제, 네가 어느 문을 통과할지 결정해야 해."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깊숙이 울려 퍼졌다.
"지금 선택하는 순간, 네 앞에 펼쳐질 세계가 앞으로는 완전히 달라질 거야."
그 순간.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속삭임.
"너는 우리를 기억하지 않아?"
"네가 돌아와야 해."
라엘의 몸이 굳었다.
심장이 뛰었다.
알 수 없는 두려움.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이끌림.
익숙한 길로 돌아간다면,
지금의 삶은 그대로일 것이다.
그러나,
저 문을 통과한다면—
라엘은 숨을 내쉬었다.
눈을 감고,
그 종이를 손에 쥐었다.
그 순간—
모든 것이 휘몰아치듯 라엘은 그 빛으로 빨려 들어갔다.
공간이 흔들리고, 시간이 뒤틀리며,
그녀의 새로운 세계가 어떻게 펼쳐질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