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로 소설 : 미라키와 라엘의 사랑

소드 에이스 - 의식의 검, 진실의 시작

초영Tarot 2025. 3. 25. 23:18

라엘이 품에 안았던 불꽃의 완드가 서서히 잦아들었다.
그 불꽃은 더 이상 타오르지 않았지만,
그녀의 가슴 안에선 여전히 여운처럼 뜨거운 숨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때, 미라키가 조용히 그녀의 손을 감쌌다.
“라엘, 괜찮아?”
그의 음성은 바람처럼 부드럽고,
불꽃 속을 지나온 그녀의 혼을 어루만졌다.

“많이 고통스러웠지.
그건 겉으로 드러나는 열기보다,
네 안의 욕망들이 스스로를 태우지 않으려 아우성친 탓이야.
내면은 언제나 이기적이고,
그 이기심은 쉽게 꺼지지 않지.”

그는 그녀의 눈을 마주보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젠 괜찮아.
비록 다시금 그 욕망들이 고개를 들 수는 있어도,
곧 만날 칼—그건 네가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는 힘을 줄 거야.”

라엘은 숨을 고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미라키가 아주 조심스럽게, 그러나 무겁게 덧붙였다.

“사실 넌 천 년 동안, 신들의 눈을 피해 숨어 있었어.
그건 어떤 의미에선… 추방이었지.
그 시간은 널 잊히게 만들었고, 무력하게도 했어.
하지만 그 망각의 시간이 끝났기 때문에
이제야 내가 널 데려올 수 있었어.”

그녀의 눈동자에 얇은 흔들림이 일었다.
그러자 미라키는 조금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내가 늘 말하던 수수께끼의 정체,
그건 바로…
왜 네가 추방당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다시 깨어날 수 있는지를 아는 것.

그는 덧붙였다.
“나는 지금, 그저 네 곁에 머무는 안내자일 뿐이야.
그게 내 벌이고, 내 사명이지.”

잠시 정적이 흐른 뒤,
미라키는 라엘의 손을 더 단단히 쥐었다.

“이제 곧, 칼날의 고통이 찾아올 거야.
하지만… 내가 네 곁에 있어.
두려워하지 마.
두려움은 진실을 피하게 만들고,
진실을 피하면 네 불꽃은 다시 잠들어버리니까.”

그는 그녀의 손을 천천히 이끌며,
검이 기다리는 언덕,
짙은 안개가 깔린 정신의 경계로 향했다.

 


 

뜨거웠던 신전과는 달리, 이곳은 차갑고도 매서운 바람이 불고 있었다.
푸른 안개가 낮게 깔린 계곡.
소리조차 스스로를 감추듯 삼켜지는 정적 속에서,
라엘은 마치 신 앞에 서는 죄인처럼,
숨도 고르지 못한 채 온몸이 얼어붙었다.

“여긴 어디야?” 라엘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안개 속을 뚫고 흘렀다.

미라키가 그녀를 바라보며 천천히 대답했다.
그의 눈빛은 깊고 맑았지만,
그 안엔 피할 수 없는 무게가 담겨 있었다.

“진실이 머무는 곳이야.
정의와 판단, 때로는 자기 자신을 가차없이 찌르는 냉정함이 함께 깃든 자리지.”

그는 말을 이어갔다.
“이제 너는…
스스로를 가르고,
그 안에 숨은 그림자를 꺼낼 수 있는 용기와 날카로움
을 시험받게 될 거야.”

잠시, 바람이 라엘의 머리칼을 흩날렸다.
그때 미라키는 아주 낮은 음성으로, 하지만 또렷하게 말했다.

이성의 검은, 네가 가진 가장 마지막 무기이자
세상과 네 안의 거짓을 모두 가를 수 있는 힘이야.

그 검을 받을 준비가 되었니?”

라엘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려움은 아직 가슴 깊숙이에서 버티고 있었지만.
그보다 더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각성하듯 천천히 고개를 들고 있었다.

 


 

"나는 아테나다."
라엘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은,
침묵 속에서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사막의 별빛 같았다.

고요하지만 매서운 시선은, 말없이도 라엘의 내면을 해부하듯 훑었다.
그 시선 끝에선 미묘한 조소가 번졌다.
또한,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칼날 같은 바람을 타고 계곡을 가르며 울려 퍼졌다.

"나는 지혜와 결단의 신. 나를 부른 자는 많지만, 감히 여기까지 걸어온 자는 드물지.
넌 그 검을 쥘 자격이 있다고 믿는가?
욕망의 찌꺼기를 다스릴 수 있다는, 그 어리석은 믿음 하나로 이 언덕에 오른 것이냐?"

그녀의 눈빛은 라엘의 눈을 가로질러
혼란의 심연까지 내려가 닿았다.

“이 검은 진실만을 따른다.
네가 그 진실 앞에 너의 그림자 하나 숨기지 않고 설 수 없다면,
감히 손을 뻗지도 마라.”

아테나는 라엘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이 검은 누군가를 베기 위한 것이 아니다.
자신의 환상과 두려움을 넘어,
자신조차 외면해온 본질과 대면하기 위한 것이지.”




라엘은 계속 옆에서 자신을 지켜보며
언제든 라엘을 보호할 수 있게
자신의 검에 손을 얹어놓고 있는 미라키의 눈을 응시했다.
그러자 미라키는 라엘의 의미를 눈치 채고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그녀의 손을 잡은 채 낮은 언덕을 향해
미라키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언덕 위의 바람은 이제 잔잔해져 있었고
하늘의 구름도 왠지 걷혀져 가고 있는 듯했다.
라엘의 용기에 박스를 보내는 듯,
나뭇가지들이 바스락 소리를 내고 있었다.

위엄을 자랑하는 긴 장검의 기세는 너무나 당당했고,
라엘이 과연 그 검을 감당할 수 있을 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저 검이야… 네가 마주해야 할 것." 미라키의 목소리는 낮고 담담했지만,
그 안엔 수많은 시간을 건너온 존재만이 가질 수 있는
두려움과 애틋함이 섞여 있었다.

"겁내지 마, 라엘.
넌 지금 막 불의 고통을 견딘 사람이야.
이건 다음 관문일 뿐이야.
내가 항상 네 곁을 지켜."

라엘은 그의 말을 믿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발끝은 땅에 붙은 듯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그 검은 단순한 무기가 아니었다.
존재를 꿰뚫는 어떤 의식의 상징처럼,
그녀를 향해 스스로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 순간 검은 마치 스스로 숨을 쉬듯,
라엘이 나타나자 미세한 진동으로 유혹의 미소를 보내는 듯 느껴졌다.

"괜찮아, 용기를 내.
난 네가 오기를 기다렸어.
날 욕심내 봐.
견딜 수 있으면 가져 봐."
그 목소리는 정확히 어디서 들려오는지 알 수 없었지만,
분명 그녀의 심장을 흔들고 있었다.

라엘은 한 발자국을 더 내딛었다.
그리고, 잠시 망설였다.
‘내가 이걸… 정말 감당할 수 있을까?’

그런데, 미라키는 그 검이 내뱉는 속삭임을 듣지 못했다.
그건 오직, 아직 자신을 믿지 못하는 자에게만 들리는,
내면의 거울 같은 목소리였으니까.

그녀가 장검 가까이 다가서자,
검은 마치 생명체처럼 가볍게 공중으로 떠올랐다가
다시 천천히, 깊숙이 땅으로 내려앉았다.

그 순간, 라엘의 머릿속이 폭발하듯 뒤틀렸다.
온몸이 무너지는 듯한 고통이 뇌를 찢고 들어왔고,
그녀는 미라키의 부축도 잊은 채, 바닥에 주저앉아 괴성을 질렀다.

눈앞은 뒤엉킨 빛과 그림자로 물들고,
머릿속에는 알 수 없는 장면들이 소용돌이쳤다.
그것은 단순한 과거가 아니었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 그녀를 짓눌러온, 벌처럼 반복된 생의 잔재들이었다.

그녀는 잊고 있었다.
자신이 누구였는지를.
신의 이름을 향해 걸어가던 존재였다는 것을.
그리고 어쩌면, 그 길에서 어긋났던 순간이 있었음을.
미라키와 함께 빛을 품었던, 운명의 주인이었다는 사실조차도.

그러니 라엘은 알 수 없었다.
왜 늘 이방인이었는지,
왜 세상의 온기가 마음에 닿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기에, 그 기억은 더욱 잔인하게 다가왔다.

그녀는 다른 이름으로 살아왔다.
다른 얼굴, 다른 목소리로,
수많은 생을 반복하며
삶의 무게를 어깨에 짊어지고,
두려움과 상처 속에서 방황해왔다.

그러나 지금—
장검은 그녀에게 잔인한 기억들만 돌려주려 한다.
그것은 악몽을 통한 암시의 축복 같았고,
진실을 감당해야 하는 대가이기도 했다.

 

미라키는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속삭였다.
"이건 네 안의 혼돈을 야기해서 널 방해하고 있어.
너의 과거를 조롱하며 네가 할 수 없다고 믿겠끔 하려는 거지.
이 또한 검의 야비한 시험이야.
그러니 너의 지난 과오를 무찌른다고 생각하고
너 자신조차 찌를 수 있다는 진실된 용기가 필요해.
모든 건, 너의 내면이 움직여야  가능한 일이야.
그 믿음의 용기가 없다면, 이 검은 절대 움직이지 않아."


 

그제야 아테나가 나섰다.
그녀는 천천히 다가와, 침묵 속에서 라엘을 내려다보았다.
눈빛은 사막의 별빛처럼 차갑고 고요했다.

"이 검은 판단의 형상이며, 의식의 칼날이다.
그것은 누구를 베기 위한 것이 아니다.
네 안의 껍질을 벗기고, 정신의 핵에 닿기 위한 것이지."

그녀는 라엘의 눈을 가로질러
혼란의 심연까지 내려가 닿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날 선 목소리로 덧붙였다.
"이 검은 진실만을 따른다.
네가 그 진실 앞에, 너의 그림자 하나 숨기지 않고 설 수 없다면, 감히 손을 뻗지도 마라."

그때, 바람이 방향을 바꾸듯 미묘하게 뒤섞였다.
안개 너머 어딘가에서 낮고 맑은 음성이 흐르듯 들려왔다.
라엘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분명히 존재했다.

"깊은 물은 말이 없고, 진실은 때로 침묵을 통해 깨어난다."

그 소리는 마치 오래전부터 존재해온, 땅속 깊은 곳에서 피어난 지혜 같았다.
녀의 귓가에 바람처럼 맴돌며, 마음속 어딘가를 톡 건드렸다.

"지혜는 날을 세우지 않는다. 다만 스스로 무뎌질 줄 아는 검만이, 끝내 진실을 품게 되지."

그 목소리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아테나가 예를 갖추는 모습을 보고 라엘은 직감했다.
‘지켜보는 지성, 태초의 통찰’, 메티스의 축복의 울림이었다.

 


 

라엘은 용기를 내어 떨리는 손을 검을 향해 다시 뻗었다.
그 순간, 정신 속 깊은 어둠을 마주해야 하는 고통이 또다시 몰려왔다.
하지만 그녀는 이젠 외면하지 않았다.
그러자 검은 천천히 날아 그녀의 손끝에 바로 꽂혔다. 

검의 예리함이 손끝에서 피를 뿜어내는 순간,
전신을 가르는 듯한 날카로운 감각이
온 몸에서 피가 빠져 나가는 듯한 착각에 휘말리게 했다.

라엘은 맨 발로 어떤 사막을 처벅처벅 걷고 있었다.
그 때, 느닷없는 독수리 떼가 라엘의 눈쪽으로 몰려드는 순간...

검이 날아 오르더니 라엘의 손에 살포시 내려 앉으며
칼 날에 'Ra. L'이란 글자를 금빛으로 선명히 새기고 있었다.

그 광경을 미라키와 라엘, 아테나까지 눈을 반짝이며 지켜 보다
그 성스러운 아름다운 장면에
모두 눈물을 흘리며 축복의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그 때 미라키가 라엘을 살포시 안으며 귓가에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이제 넌 정신의 빛을 손에 넣었어. 라엘...
넌 너를 찾고 있어. 대단해."
그 눈빛은 경이로움에 들떠 있었다.

아테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진실은 언제나 차갑고 냉혹하지만, 가장 정직한 따뜻함을 또 품고 있지."

라엘은 자신의 손에 쥐어진 검을 내려다보았다.
그 검은 단순한 무기가 아니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그녀가 지나온 길, 감정의 흐름, 불꽃의 열망, 그리고 이제 정신의 명확함까지.
모든 여정이 하나의 칼날에 'Ra. L'로 새겨져 있었다.

그녀는 조용히 속으로 중얼였다.
"나는… .
내면의 모든 거짓에 대한 응징과 추방을 스스로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었어."

그 순간, 칼끝에서 빛의 바람이 일었다.
그녀는 검을 높이 들었다.

세상이 고요히 흔들렸다.
이건 시작이었다.
진실의 검이 주인에게 돌아간 순간이었으며 모든 어둠에서 깨어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