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Magican : 미라키와 라엘, 마법에서 깨어나다
라엘은 바람에 휘말려 어딘가로 떠밀려왔다.
혼란과 낯선 무게가 그녀를 바닥으로 끌어내렸다.
순식간에 세상은 더 이상 자유롭게 떠다니는 공간이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질서의 힘이 그녀를 단단히 사로잡았다.
조심스럽게 주변을 둘러보니, 오래된 나 테이블 위에 네 가지 신비로운 물건이 놓여 있었다.
물이 가득 찬 컵, 작은 불꽃이 타오르는 지팡이, 예리한 양날의 검, 황금빛으로 빛나는 펜타클.
이 물건들이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본능적으로 그것들이 중대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긴 어디지?”
'혹시, 나를 이곳으로 이끈 존재가 아직 있을까?'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속삭였다.
그러자, 그녀의 등 뒤에서 낮고도 선명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긴 네가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는 곳이야.
네 앞에 놓인 도구들은 네 길의 근본이 될 거야.
하지만, 그것들은 네가 선택하고 사용할 때만 진짜 힘을 발휘하지.”
라엘은 고개를 들어 주위를 다시 둘러보았다.
현실과 환상이 교차하는 듯한 공간.
손에 쥔 종이가 미세하게 떨렸다.
이 종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순 없었지만, 놓아서는 안 된다는 확신이 들었다.
“난 어떻게 해야 해?”
미라키가 조용히 속삭였다.
“넌 이제 마법을 풀고 그 마법을 현실로 실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해.
네 앞에 놓인 것들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그것들의 진정한 쓰임을 깨달아야 해.
그 과정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자신을 믿는 것’이야.
네 안의 가능성을 의심하지 않는 것. 그것이 네가 첫 번째로 받아들여야 할 진리이자, 우주의 본질이야.”
라엘은 손에 쥔 종이에서 알 수 없는 에너지를 감지하며 펼쳤다.
순간, 흐릿한 글자들이 꿈틀거리며 형체를 바꾸었다.
그녀가 집중하려 하면, 금빛 글자는 형체를 감추며 더욱 흐릿해졌다.
그 순간, 미라키가 다가와 그녀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포갰다.
부드러운 온기가 전해졌다.
평온이 그녀를 감싸는 듯했다.
그러나, 그녀는 본능적으로 거부하려 했다.
그 순간, 그의 숨결에서 미묘한 슬픔이 느껴졌다.
그리고, 미라키의 떨리는 목소리가 라엘의 귓가를 울렸다.
“이 종이는 네가 깨달음을 얻을 때마다, 진실을 허락할 거야.
그전에는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지.”
라엘은 미라키의 체온을 가만히 느꼈다.
그의 손길은 따뜻했고, 그 온기가 그녀의 불안을 지워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그의 손을 꼭 쥐었다.
눈앞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그 무엇.
호기심이 심장을 두드렸다.
그의 진짜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 순간, 바람이 휘몰아쳤다.
어슴푸레한 빛이 감돌며 공기가 차츰 가라앉았다.
그리고, 마침내 한 사람이… 그의 형체가 서서히 드러났다.
검고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바람에 살짝 흔들렸다.
이마 위로 곧게 뻗은 콧날,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운 입술,
밤하늘을 담은 듯한 푸른빛의 눈동자가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차가운 듯 따뜻한, 신비로운 광채를 품은 눈빛.
감동이 서린 듯한 촉촉한 시선이 그녀를 사로잡았다.
낯설지만, 어딘가 익숙한 얼굴.
하지만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미라키는 조용히 미소 지었다.
그리고, 활짝 웃었다.
그의 눈과 입술이 더욱 선명해졌다.
그는 그녀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
“이제야… 너를 볼 수 있어.”
그녀는 숨을 삼켰다.
“라엘... 보고 싶었어.
네 눈을 마주하기 위해, 너무 먼 길을 돌아왔네.
나는 미라키야.”
그의 목소리는 바람에 실려 낮지만 분명하게 울렸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눈을 피하려 했지만, 그의 시선이 그녀를 단단히 붙잡았다.
그리고, 미라키는 천천히 그녀의 손끝을 잡아 올려 자기 가슴에 가져갔다.
“라엘.”
그가 부르는 목소리에 심장이 격렬히 요동쳤다.
“난 항상 네 곁에 있었어.
네가 나를 볼 수 없었을 뿐.
하지만, 나 역시 이렇게 선명히 너를 느낄 수는 없었어.
주변을 맴돌 뿐이었지. 너의 모든 걸 지켜 보면서...”
그는 목이 메인 듯 뒷말을 애써 참았다.
그녀를 지켜보면서 많은 괴로움을 삼켜야 했던 순간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녀 또한 뭔가 모를 아픔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 그의 숨결, 그의 존재가 이젠 너무도 확실했다.
의심의 여지 없이...
그의 얼굴이 그녀의 얼굴로 가까워졌다.
그의 가빠진 듯한 숨소리가 그녀의 심장을 더 빠르게 뛰게 했다.
그리고, 그녀는 깨달았다.
미라키는 단순한 안내자가 아니었다.
그는 언제나 그녀를 기다려온 존재였다.
그러나, 왜? 무엇 때문에?
미라키는 라엘의 마음을 눈치챈 듯, 몸을 바로 세우며 확고한 어조로 말했다.
“라엘, 지금부터 우리는 모든 수수께끼를 풀어야 해.
그래야, 우린 영원히 함께 할 수 있어.
본래의 우리로 돌아가는 거지.
그리고, 자연스럽게 나를 알게 될 거야.
그러니, 너무 조급해하지 마.
두려워도 하지 마.
넌 본래 모든 걸 할 수 있는 사람이었어.
또다시 나를 포기하고 널 포기한다면, 우리에겐 더 이상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을 거야.
기억해 줘.
그리고, 우린 이 기회에 대한 감사를 절대 잊어선 안 돼.
세상의 모든 신은 우리를 사랑하고 있고,
본연의 모습으로 우리가 다시 이어지길 원하고 있어.
나의 간절함을 들어주신 거지.”
그 순간, 갑자기 라엘의 발밑이 흔들렸다.
마치 미라키의 말과는 반대로 신이 그녀를 거부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온몸이 휘청거렸다.
재빠르게 미라키가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
“나를 봐, 라엘. 괜찮아.”
그녀는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의 손이 닿자, 마치 온 세상이 그녀를 받아들이는 듯 균형이 느껴졌다.
미라키의 따뜻한 온기가 다시 손끝에서 퍼져 나갔다.
“난 이제 너와 함께 나아갈 준비가 돼 있어.” 미라키는 조용히 말했다.
라엘의 얼굴이 다시 붉게 달아올랐다.
이상하게도, 그의 말을 가슴 깊이 원하고 있음을 알아차리는 순간이었다.
그녀는 순간,
미라키는 단순한 동반자가 아닌, 그녀의 운명임을 직감했다.
라엘은 조용히 탁자 곁으로 다가가 네 가지 원소를 모두 품 안에 안았다.
“미라키...” 처음 미라키를 부르는 순간이었다.
미라키의 눈이 글썽렸다.
“응, 라엘... 네가 내 이름을 불러줄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 고마워...”
“미라키, 이제 이 네 가지 물건의 정체와 내가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다 알려 줘.
그리고, 나도 이젠 나를 찾고 싶어.
널 믿어.
신의 마지막 기회라면,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아.
그리고, 너의 눈은 내게 모든 걸 말해주고 있어.
지금부터 난, 나의 마음을 따를 거야.
그리고, 모든 수수께끼를 풀래.
네가 누구인지도, 내게 어떤 사람인지도 분명히 알아야겠어.
난 지금 궁금한 게 너무 많아.
이제 알려 줘.
내가 나를 믿고 확신할 수 있게.
모든 걸 깨우치게 해 줘.
내가 신의 사랑 속에 있음을 확인시켜 줘.
난 이제 여기서 도망치지 않아.
돌아가고 싶지도 않아. 난 선택했어.”
그녀는 이제 분명한 시작점에 자발적으로 서 있었다.
“라엘, 이제 너는 운명의 문을 열었어.
네가 어디로 가든, 어떤 길을 선택하든, 나는 언제나 네 곁에 있어.
이 순간부터 우리는 하나의 이야기, 하나의 운명, 하나의 영혼을 찾아 함께 떠나는 거야.
네 심장이 뛰면, 내 심장도 같은 주파수로 움직여.
혹여 네가 흔들릴 때, 나는 네가 좌절하지 않도록 도울 거야.
운명은 이제 우리를 갈라놓지 못해.
우리가 함께라면, 어디든 갈 수 있어.
네가 어디를 가든, 나는 언제나 네 곁에 있을 거야.
미라키는 오직 라엘만을 위해 존재해.”
라엘의 눈은 감동과 가슴 벅찬 환희로 반짝이고 있었다.
그리고, 신이 선물한 4원소를 공부하기 위해
그들은 따뜻한 햇살과 꽃이 만발한 정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